여가활동/공연·문화관람

공주 무녕왕릉을 보고나서

바람.구름따라 2009. 1. 4. 16:47

무녕왕릉을 보고나서 ...

 

1971년 당시 ..
고대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을 연결하는 역사의 키를 밝혀줄 중요한 발견이 있으니 무령왕릉이다...

왕릉을 보고 느낀점과 인터넷 검색한 것을 바탕으로 몇글자 올려본다

 

첫째 발굴과정의 치명적 실수이다 당시 상황을 보자 (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군중들은 마치 서커스구경꾼처럼 발굴현장을 빙 둘러쌌고, 기자들은 발굴팀을 밀치고 무덤 속 유물들을 짓밟으며 연신 사진플래시를 터뜨렸다. 심지어 경찰조차 무덤 먼저 보겠다고 고개를 돌리자 발굴단은 망연자실했다. 때는 1971년 7월8일 밤. 이틀 전 충남 공주 능산리 백제무덤떼의 배수로를 파다 우연히 발견된 무녕왕릉 묘실 발굴현장은 혼란상 그 자체였다. 하룻밤새 소중한 무덤유물을 쓰레기 훑듯 퍼낸 치명적 실수는 이런 상황에서 빚어졌다. 발굴실무자로 무덤입구를 지켰던 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이호관씨는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놔두면 큰 일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증언한다.

 

둘째 발굴후  연구를 일본이 주도했다는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학계를 더욱 부끄럽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쪽 학자들의 연구가 90년대까지의 무녕왕릉 논의를 주도했다는 데 있다. 이토 아키오, 요시이 히데오 등의 일인학자들은 중국 등지의 방대한 외국자료를 섭렵해 자기네 역사와 연관이 있는 목관과 금동신발, 구리거울 따위의 유물교류사 연구를 수준급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은 꼼꼼한 비교연구로 일본산 소나무로 만들어진 목관이나 청동거울, 고리형 큰 칼(환두대도) 따위 금속유물들에 얽힌 백제-고대 일본의 문화교류양상을 규명해 무녕왕이 일본서 태어나 왕 등극 전까지 살았다는 <일본서기>기록에 힘을 실어주었다. 심지어 백제적 독창성이 엿보이는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나 금속장신구 등의 유물은 중국남조 하사품이란 도발적 추론까지 제기하고 있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명쾌한 반박근거를 대지못하고 있다. 무덤주인공의 생몰년이 확실하다는 점 때문에 대개 다른 고대유물의 절대연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만 유물에 접근해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물분석에 대한 논쟁적 텍스트들이 없다는 게 후학들의 하소연이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녕왕릉이 릉군락에서 떨어진 다른곳도 아닌 같은 공간인데 발굴이 안되고 남아 있었다는게 의문점을 더한다 더욱 의구심을 더하는것은 백제의 독창성은 하나도없이 중국남조의 수입품,일본제 소나무 목관까지..)

=>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유물도 없을뿐더러 역사책 자체를 일본에의해 만들어졌으며 더구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훨씬 많이 알고 그러다 보니 주도권을 가지는것도 우리가 될수 없다는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연구하시위해서는 주변국의 역사책의 내용을 빌어 유추할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세째 우리의 고대사의 일부인 백제에 대하여 주변국 사서를 통한 내용에는 이런 의견도 있음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제목:  KBS 대백제(2) 백제의 코끼리는 어디서 왔을까?

 

2. 百濟백제의 謙益겸익스님이 526년 인도를 여행하며 인도 불교경전을 연구할 정도로 백제는 대외적으로 활동적이라 했다. 그리고 반도 능산리 무덤에서 출토된 百濟백제 유물? 金金同大香爐금동대향로의 문양속에는 코끼리가 있다. 

金金同大香爐금동대향로 의 코끼리는  사람이 탄 모습을 그리고 있어 아시아의 코끼리가 분명하다. 아시아의 코끼리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분포되어 있다. 印度인도의 힌두교에는 코끼리神신이 있는데 그 이름이 가네샤로써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 한다. 印度에서 코끼리라는 명칭은 높은 신분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印度인도, 동남아가 百濟백제의 영향권내지는 百濟諸侯國백제제후국 이었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3. 일본 나라현의 후지노키고분에는 반도 百濟백제 武寧皇陵무령황릉?(주2)서 나오는 금동신발, 금동거울과 닮은 것들, 코끼리 象牙상아로 만든 바둑알, 코끼리가 그려진 바둑알집,바둑판, 코끼리가 부조된 馬鞍具마안구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중 바둑판은 17점으로 두는 순장바둑식 판이라 하는데, 半島반도스타일로서 일본과 대륙의 바둑판과는 다르다 했다.

상아와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목재는 어디서 구했을까?
 

           [대향로에 조각되어 있는 코끼리와 악어]

여기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 흔적은 일본의 고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남이라는 나라의 노예를 일본에 보냈다는 글귀.

 


 

(주2) 武寧皇陵무령황릉?: 반도 충남 송산리 고분이고, 제도권에서 유일하게 반도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황릉?이나, 허구로 증명이 되었다. <참거짓의 역사1 고구려,백제,신라의 터전 중원 (정용석 지음)> 청노루,1995. 166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그렇게 형편없는 왕의 지석은 동양사회에서 지석이라고 발견된 것에는 깨어져 조각난것이외에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득권세력이 힘을 내세워 속전속결로 백제무열왕릉으로 확정지어 버린 것이다.” 송산리고분은 황릉규모로서도 너무 초라하고, 지석도 맞지않고, 각종 문헌과도 일치하지 않아 무열황릉이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원래 백제황릉은 대륙에 있어야 한다.
반도 충남에서 출토된 武寧皇陵무령황릉은 황릉이기 보다는 제후국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적고, 초라하며 황릉으로서의 구조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