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고도 부여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
고구려는 살아있는 대륙정벌의 기상으로, 신라는 통일국가로 이어와서 경주에서 화려하게 남아있지만 노래가락처럼 한으로 남아 있을뿐이다.
그런 백제가 부여와 함께 요즘 살아 꿈틀거린다..
이번 부여여행은 허상의 백제를 실존하는 그리고 손에 만져지는 그런 계기가 된다
충남 부여읍의 자그마한 도시에 그런 수수께끼 같은 과거를 풀어주는 고대왕국의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부여를 여행하기 전에 내가 부여에 이미지는 낙화암과 삼천궁녀 그리고 왕의 무덤, 박물관정도..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보니 부여는 백제고도로써 많은것들을 갖추고 그리고 되살려 놓았으며 그리고 하루 여행으로는 시간이 빠듯하게 느켜지는 코스였다
여행코스를 검색해보니 가장 와닫는곳은 나에게는 생소하면서 조성된지 얼마안되는 곳 그리고 보고나서는 조성하는 이의 긍지와 자부심이 느켜지는 “백제문화단지”
이곳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으며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이곳의 구성은 백제의 사비성의 모습과 백제인 생활모습 그리고 위례성을 재현해놓았는데
백제의 왕궁 모습은 어디에서 찾았는지 궁금해 해설사에 물어보니 백제의 형제국의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의 안악궁이 아직 실존해 있어 그곳자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곳을 통해서 고구려의 왕궁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은 구조가 간단하다 정문(정양궁)을 통하여 들어서면 중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동궁과 서궁이 있다
그리고 불교국가인 만큼 왕궁의 오른쪽에는 왕궁의 법당이 위치해 있는데 이법당은 성왕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아들인 위덕왕이 세운 법당이라한다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겨 백제의 부활위해 신라 왜 등과 손을 잡고 한성을 회복하고자했던 그리고 회복했다가 신라의 배신으로 빼앗기고 그 복수를 하기위해 출전한 아들을 위로하기위해 출전했다 신라에 의해 전사한 성왕은 왕명에서 느껴지듯 백제를 되살리는 뛰어나면서도 인정이 많은 그러나 그 인정 때문에 전사하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서는 왕이다
그러한 성왕을 모시는 아들의 심정으로 세운 능산리 고분을 제현해 놓은 법당이 능사이다
이곳을 보고나서 아! 삼국에서 불교가 찾이하는 의미를 알 수 있고 또한 말로만 듣던 신라의 황룡사9층석탑이 화려했다던데 이정도였겠구나 생각들기도 한다
오랜된 건물만 의미있는건 아니다 잊혀진 역사를 공들여 되살리고 재현해놓는 정성도 그에 못지 않는 감동을 줄 수 있다는것도 알게되는 현장이다
- 왼쪽은 대웅전 오른쪽이 5층 목탑-
탑의 총 높이는 38미터로 5층 목탑이 30미터 그리고 황금으로 된 상단부는 8미터로 탑의 총 높이는 아파트 13층 높이라고 한다
백제 문화공간을 다 보고 나니 오전시간이 다 지나간다 이제 들어가 백제의 유물들을 보러 부여읍내로 들어간다
우선 밥을 먹어야지 읍내로 이동한다 읍내의 로타리에는 우선 성왕의 좌상이 있고 근처에 굿뜨래 음식특화거리가 있다
33개의 식당이 특화거리에 모여있어 골라먹을 수있게 되어있다 우리가 들른 곳은 구드래돌솥쌈밥 집이었는데 이곳은 돌솥쌈밥 최초로 시작한곳이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맛집으로 사람도 많았고 맛도 좋았다 반찬하나하나까지 맛있어 남기지않고 거의 다 먹고 나왔다
식사후에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는 부소산성을 들를 예정인데 두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부여읍내에서 산성으로 걸어서올라가는 방법과 또하나는 구드래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백마강을 유람하며 부소산성 후문을 통해서 오르는 방법이다
시간을 아끼고 다소 지친 우리는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낙화암을 올려다보면 우암 송시열이 새겨 놓았다는 낙화암 빨간색의 글자가 눈에 들어와 배에서 흘러나오는 “백마강”노래와 함께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에 우수에 젖게한다 유람선은 부소산성 후문에서 내려주고 산성후문에서 오르면 고란사와 낙화암에 이른다.
고대국가 멸망 당시의 상황들이 후손들에의해 고란사의 벽그림에도 남화암의 입구의 싯구에도 고스란이 남겨져 1400년 전의 애환을 전달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구드래 항구 주변은 관광명소임에도 웃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듯하다
- 낙화암에서 내려본 백마강-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낙화암-사진 하단 붉은 글씨
고란사벽에 그려진 3천궁녀 낙화 모습
벌써 시간은 3시 반이다.. 정림사지5층석탑과 국립부여박물관 남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우선 정림사지석탑을 보러간다 이곳은 부여읍내에 위치한 사찰터로 지금은 사찰은 없고 넓은 터에 탑이 있고 정림사지 박물관이 들어서있으며 주위에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다
탑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탑은 목조형탑 형식을 갖춘 석탑으로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형식을 알 수 있는 오래되고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탑의 아래 탑신부에는 당나라의 소정방의 증전기공문이 새겨져 있다는데..자세히 보면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간곳이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시간상 이곳은 넘어가고 궁남지에서 쉬엄쉬엄 연꽃연못을 보고자했으나 아들이 백제문화단지에서 금동대향로에 필이 꼿혀 박물관에 꼭 가야한다기에 부랴부랴 서둘러 박물관으로 향한다
사비성이 나당엽합군에 멸망당시 땅속에 뭍혔다가 1993년에 능산리사지 발굴 조사하면서 그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화려하며 섬세한 기술로 만들어진 향로는 정상부의 봉황과 몸통과 뚜껑 그리고 용모양의 받침으로 이뤄진 백제의 공예와 미술,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 파악해주는 귀중한 작품으로 일반인의 눈에도 섬세함과 화려함이 느켜지는 작품이다.
이렇게 부여 여행을 마무리 한다...
부여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백제의 고도로 앞으로도 관광도시로 충분한 잠재력이 보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주에 신라가 있다면 부여에는 백제가 살아있다 다만 아직 개발이 진행되는 곳이 있어 어수선하기도 하고 아쉬운 것은 백제의 고도에 걸맞는 부여읍내에 거리에 관광지 안내표지판이 부족하게 보인다 부여로 진입하면 안내표지판만 따라가면 관광지를 만날 수 있는 안내표지판과 안내책자와 지도를 갖춘 관광안내소를 눈에띄는 곳에 설치하여 처음찾는 관광객들이 관광지를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배려가 있다면 부여를 찾는 이들이 백제의 세련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여에서 느끼고 간직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중국은 만주를,고구려를 중국화 시키기위해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입장에서는 북한넘어 만주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땅에는 만주벌판을 옮겨놓은, 고구려와 같은 뿌리를 가진 백제가 있다 백제를 살리는 것도 고구려를 살리고 만주벌판을 살리는 길이다.
우리 한반도는 갖혀서 단절되었는가??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 대륙이 막혔지만 해양진출을 통해 대륙을 지배했던 백제의 역사를 봐야 할 것이다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북은 철도를 통하여 대륙으로, 남은 해양을 통하여 세계로 진출하는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나라는 백제의 해양진출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 밖의 사진들...
- 예산 사과 -
- 수련관에 많았던 꽃 이름이??? -
- 사비성 앞 정양문 -
- 궁남지 연꽃 -
부여에서 되살아나는 백제를 느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