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활동/공연·문화관람

영화 활의 시대적 배경..

바람.구름따라 2011. 8. 23. 01:57

물이조아에서 이번 정모는 영화관람이었다

병자호란의 "화냥년" 거기에다 활을 잘 쏘앗다는 우리민족의  역사적 배경으로을 적당히 버무린 활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알아보자

청나라의 태조는 누르아치이며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원래 이름은 후금이다

청나라하면 우리는 오랑캐라며 비웃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시켰으며(원나라 몽고족을 제외에는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했으며 지금의 중국영토를 확정지었다고 보면 됨)

...사실 중국의 영토 확장은 대부분 이민족(오랑캐)이 넓혔음..

 

병자호란이 발발 이유는..

 

그당시 중국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로 당시 조선의 왕 광해군은 적절한 양면외료로 균형을 잡았왔으나

임진왜란 당시 도왔던 명나라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조선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 반정에 성공하며 후금(청)을 배척하고 기울어가는 명나라를 섬기게 되고 ..

한편 중국의 상황은 명나라가 기울고 청나라가 세력을 잡게되지만 조선은 의리를 지킨다며 명나라를 여전히 섬기고 청나라는 오랑캐라며 여전히 무시한다.. ..아마 크게 다칠걸...

 

결국 중국의 세력을 잡은 청나라는 조선을 아래와 같은 이유로 침략하게된다..

(그당시 청나라는 2대황제로 후금을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皇太極]이다)

첫째 두나라는 본디 원수진 일이 없는데 아무 까닭도 없이 명의 군사를 도와 우리를 공격했다.

둘째 우리나라가 요동을 차지했으나 조선은 이웃나라로서 한마디 말도 없다가 모문룡(명나라 장수)을 숨겨주고 양곡과 말먹이를 공급했다

셋째 모문룡을 조선에 놓아두어 우리의 도망치는 백성을 유인해 도둑질하게 했다. 조선이 방관했다

넷째 우리황제가 죽었을때 원수사이인 명나라도 사람을 보내 조문하고 예물을 가져와 새 활제를 축하했다.

우리 황제는 조선과 털끝만큼도 좋지 않은 검정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조선에서는 한사람도 조문하거나 축하하러 오지 않았다.[인조실록]

 

그래서 발생한 병자호란 결과는 조선의 대응은 어뗐을까요..

...청나라 만주기병이 압록강을 건너서 한양까지 진격하는데 걸린시간은 일주일이 안된답니다..

조선의  고속도로를 막힘없이 달린겁니다 ...이건 전쟁이 아닙니다 그냥 달려와 당시 조선임금인 인조는 피난할 시간도 없어 부랴부랴 남한산성으로 피해서 45일 버티다가 삼전도 치욕을 겪고 항복합니다..

이게 조선입니다 그전 임진란때도 일본이 밑에서 막힘없이 올라왔죠

다만 조선의 지원을 받지도 못했던 이순신장군만 해상에서 고군분투하지만...전쟁이 끝나자 자기의 미래를 알고 자결하듯 생을 마감하구요..

 

이게 조선이라는 나라입니다...  

 

그럼 청나라의 뿌리를 알면 우리민족과 기가막힌 관계가 나옵니다

 

청나라의 원래이름은 "후금"이다 즉 금나라가 원조인데 금나라를 찾아가보자...

-  당시 고려시대로써 한족은 송나라인데 송은 힘을 못쓰고 이민족이(오랑캐??) 세력을 떨치던 시기로 거란이 발해를 멸하고 세력을 떨치다가 금나라에게 망하던 시기입니다 금나라 다음이 칭키스칸의 몽고(원나라)입니다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위를 뒷바침하듯 금나라와 청나라의 왕족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느끼고..

그것도 부족해 나라이름은 금나라 즉 금은 김씨 성과 같은 글자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나오는가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즉 다시 말해서 통일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고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역사책에서 배웠는데...마의태자 아들중 한명이 결국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거네요

...금나라, 애신각라...

 

 

 

= 김훈의 남한산성 =

청나라 황제(태종)이 조선의 인조에게 보낸편지 중에서....

 

이제 짐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희 팔도를 소탕할 거인데, 너희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치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