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백두산
백두산 4일째(백두산자연사박물관-안도현-길림시)
서파종주를 마치고 장백산호텔에서 1박후에 관광을 시작한다 6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미인송(미송)숲을 지난다 미인송을 지나면서 경파가이드의 미인송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주는데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과 스토리가 비슷하다 전에 왕지 연못에 이야기도 오수의 개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다 조선족이 살았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지역에다 전설이 비슷하다면 같은 생활권임을 추측해볼수도 있겠다
박물관에 들러 백두산의 역사와 생활 식물과 동물 그리고 백두산 괴물까지 모습을 담은 백두산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는데 백두산에서보았던 들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백두산이 중국산임을 광고하는 역사적 사건과 괴물이 빠지지 않는다
박물관을 나서서 2시간정도 가니 안도현에 도착한다 이곳은 조선족 자치주중에 학습열도 높으며 가장 조선족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가장 잘 유지한 곳이라고 한다 간판을 봐도 한자와 한글이 두가지 모두 표기되어 있으면 한국인들이 그냥 와서도 언어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곳 같아 보인다
< 조선족 이발소이다>
<점심식사를 한식당이다>
이곳 매뉴가 푸짐하다 먼저 삼겹살이 나오고 소고기 2종류,오리고기,국물 등 다양한 고기들이 나와 다먹지도 못하고 반납하고 만다 그래도 삼겹살에 맥주가 나오니 분위기가 무척 좋다 서파종주도 무사히 맞치고 부담없이 지나온 길을 농담섞어 분위기 좋게 점심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는 우연하게도 차 뒤자석에 앉은 이들이 같이 자리하게 되어반가웠고 거의 같이 해온 아가씨들과도 거의 한팀이 되듯 친하게 식사시간을 같이 하게된다
<식당안에서>
안도현에서 12시40분에 출발하여 돈화를 거쳐 길림시에서 4박을 하게된다
안도현에서 돈화가는 길은 아스팔트는 깔려있는데 길이 울퉁불퉁하여 주기적으로 놀이기구를 태워 좌석에 엉덩방아를 찍게한다
<돌아오는길>
돈화가는길은 우리나라 시골마을 그대로를 옮겨놓은 듯하다 뒤에는 아기자기한 산은 마을을감싸고,마을 좌우로는 가능한한 산 밑까지 파고들어간 밭들에는 여러가지 곡식들이 자라고 있다 짜시래기땅도 놀리지 않는다 조그만한 공간을 여러가지 곡식으로 가득채워져있다 그리고 마을 앞쪽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시냇물 좌우에는 모가 가득한 논들이 배치되어 뒤의 산과 앞의 시냇물과 마을들이 전체가 하나인 언제 봐도 우리동네인듯 다정다감한 풍경이다 차창밖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본다 봐도봐도 실증나거나 지겹지 않다 봐도봐도 정겨운 우리네 마을 풍경이다
< 차창밖의 조선족마을 풍경>
우리민족은 어쩔수 없나보다 어딜가나 논에 벼를 심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조정래의 아리랑책봐도 우리민족은 만주를 가든 어디를 가든 밭을 논으로 만들어 어떻게든 물길을 뚫어 논농사를 짓고 살아갔다고하더니 우리민족은 어쩔수없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도 논농사는 천대받는 직업이 되버린지 오래고 FTA랍시고 우리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고 세계화에 나서는 중이다 우리민족은 역사는 오래됬지만 좋지 않은게 하나 있다면 자기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것이다 만주벌판과 대륙을 호령하던 패기는 어디다 버리고 중국을 섬기며 중화소국으로 전락하며 자기 같은 민족인 몽고족,여진족(청나라)보다 중국을 더섬기더니 지금은 우리것은 다버리고 서양것만 좋다고 좋은 것 나쁜 것 구별없이 가져다 쓰기에 정신없다 이렇듯 벼농사를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우리민족이건만 지금에는 그오랜 먹는 습관마저 바꾸라고 강요하는 꼴이 되가고 있다
우리는 분명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는 몽고족이지 한족이나 서양족이 아니며 한족보다 더오랜 전통을 가진 민족임을 언제가 깨닫고 어깨를 펴고 살아갈것인가
우리의 역사도 친일역사나 서양, 중국의 역사로만 해석하지 말고 일본의 역사책이나 청나라의 역사책 그리고 저기 터키의 역사책 등 우리역사와 관련이 깊은 나라의 역사도 긍정적으로 연구해야 할것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면 과거를 지배한다”
조선족 자치주이다 경파가이드는 진가를 발휘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6시와 2개현으로 인구는 200만이며(조선족은 80만이다)조선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이러다간 조선족 자치주도 머지않아 사라지리라고 한다 여자들은 한국으로 시집가고 이웃은 미국으로 어디로 이민가고 한때 중국은 산동성에서 집단으로 인구를 이주시키기도하여 중국화시키려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조선족이살아왔고 고구려 훨씬 이전부터 지켜온 우리 조상들의 땅이건만 이리찢기고 저리 나뉘고 그나만 남은 조선족마저 줄어들고 한반도라도 남북이 평화롭게 지낸다면 희망이라도 보이련만 이를 어이하리 마음은 급하고 우리민족의 진도는 지지부진하고 어이하리 …..돈화를 약간 지나 휴게소에 들르니 눈에 띄는 지도가 보인다 뭔지 몰라도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 있나보다 다들 그그림을 쳐다보고있는데 까막눈이라 …성태형님이 경파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도라고 한다
<조선족 자치주 지도>
지도를 일일이 가리키면 현재위치를 알려준다 지금 위치가 조선족자치주 끝점에 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가니 고속도로 통행요금 징수소가 나오고(중국은 국도에도 일정거리를 지나면 요소요소에서 도로통행요금을 받는다) 산을 지난다 여기가 진짜 조선족 자치주를 끝나는 지점인듯하다 날씨도 내마음을 아는지 징수소를 지나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농사형태도 논농사와 밭농사가 보이던 것이 논이 점차 줄어들고 밭에는 옥수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내마음도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을 떠나는듯 차창밖의 흘러내리는 빗물에 시선을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어느정도 지나다 과일가게에 잠깐들러 본다
<과일가게 풍경>
과일가게에 들른후 경파가이드의 강의가 시작된다
몇가지 간단한 회화가 재미있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스팔로마) 절대 잊을수 없는 문장이다,높임 인사말(닌하오),수고하셨습니다(쉰콜라) 등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야시장에서 써먹는 말을 생각못했던 얼마입니까(도이첸) 등등
그리고 수화 숫자도 배웠다
아래 사진 수화숫자이다
<수화 숫자 6과9>
중국지도를 보면 조선족자치주는 나오지 않는다 왜 내몽고자치구,신장위그루자치구,티벳자치구 등등은 나오는데 조선족자치주만 나오지 않는가??
자치[구]와 자치[주]의 차이이다
자치주는 자치구보다 작은 개념으로 지도상에 표시가 안되는 것이다 조선족은 유일한 자치주 라고 한다 작은 인구로 유일하게 자치주로인정받고 있으니 대단하다 그러나 어찌 생각해보면 중국의 4개의 자치구를보면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족자치주도 외곽이다 우리조선족만 외곽에 있으면서 자치구가 못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수도 있다
<중국행정지도>
조선족 마을은 지나고나자 벼농사의 모습도 줄어들면서 밭에는 옥수수가 점차 늘어간다 하지만 고구려의 창고모습은 계속된다<높은 나무기둥을 몇 개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목재가옥을 만들어 올려놓은 이 별난 모습의 건물은 중국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경(桴京)이다.『삼국지』편집자는 고구려인의 생활양식을 묘사하면서‘집마다 조그만 창고인 부경이 설치되어 있다’고 전한다.>
<부경을 가진 중국마을 모습>
역사는 흐름이다 어찌보면 흐름이란 인간이 거스를수 없는 영역이란 말도 된다 그렇지만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를 알고 앞으로 대처하고자 함이다 역사는 흐름이지만 또 돌고 돈다 지금의 역사는 서양이 지배하는 시기이지만 그전에는 동양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4대문명의 3곳이 아시아이고 1곳이 아프리카이며 세계 4대종교가 아시아에서 나타났다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돌고 도는 역사라면 반드시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과거의 영광은, 땅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우리것임을 알고 준비할 때 만이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애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윤대장이 하는 일은 분명애국이다 ...
우리의 백두산에 한해에 수백명씩 인도한다 그것도 해마다 줄기차게…
애국가의 백두산만 외쳐서는 우리만의 백두산이 되고 세계는 장백산만 알게된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가보고 느켜보고 실상을 알아야 할것이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기에도 박은식 선생은 혼을 빼앗기지 않으면 나라를 잃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백두산도 그렇다 과거의 우리의 역사였고 우리의 영광이었음을 잃지 않고 이렇게 쉬지 않고 찾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가는 돌아오는 날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우리의 백두산과 그들의 장백산은 분명 다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