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활동/공연·문화관람

우리곁의 고구려유물은..

바람.구름따라 2010. 1. 1. 11:00

 291230우리곁의 고구려유물(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에 관한 유물전이라면 만주벌판을 말타고 요동을 점령하고 중국의 만리장성까지 깨뜨리며 중원땅을 벌벌 떨게하는 동북아의 패자를 생각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기대하고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프로그램은 어느 박물관 고대의 유물과 별반 다름없는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유물들을 박물관의 큐레이터(박물관에 소속된 고구려관 전문해설자)가 직접 설명하게된다.

 

시대는 고구려의 전성기 광개토태왕을 거쳐 장수왕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남쪽에 세력을 뻗어나가면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킨 시기부터(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다) 신라의 진흥왕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기까지 80년의 세월동안의 유물이 지금 21세기 우리곁에 와 있게된다.

그 지역이  한강 유역의  용마산과 아차산보루 그리고 구의동 보루(보루는 소규모성을 말함) 즉 군사시설이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의하면 고구려입장에서 한강은 최남단 지역으로 주로 군사시설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출토된 그시대의 유물을 통한 현대인으로써 그당시의 그곳의 군사 주둔 규모와 군대막사의 건물모양과 건물에 사용된 재료  그리고  유물을 통한 점령시기 등을 하나하나 유출해낸 사항을 설명한다

먼저 설명된 곳은 구의동 보루이다 이곳의 유물은 의미가 있는 유물들이 다수 나왔는데 창과 화살,쇠뇌 그리고 아궁이에 솥까지 그대로 출토되었다 한다 이유를 추측하자면 이곳은 10여명의 군사들이 주둔한 전방으로 적의 기습에 몰살되어 무기류를 챙겨 피신한 틈도 없었던걸로 추측 할 수 있단다

- 구의동 보루 - 

 

 구의도보루 유물에 비하여 뒤쪽에 위치한 홍련봉,아차산,용마산 보루는 유물이 거의 없다는 점은 전방의 구의동보루의 습격을 알고 후방의 보루들은 안전하게 짐을 챙겨 피신한 걸로 추측 할수 있다고 한다.

- 아차산 일원 고구려보루-

 

유물들은 군사지역이다보니 군사유물과 그리고 평양등지에서 멀어 보급이 되기 힘들어 군사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하기위한 것으로 추측되는  농기구 유물이다 농기구들을 보면 쇠스랑,쇠도끼,쇠솥 등등인데 놀랍게도 우리 시골의 70년 또는 지금도 시골에서 사용하는 농기구들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00년대 사용하던 농기구들이 1500년이 지나도록 지금 21세기까지 사용하는 농기구들이 똑같을수가 있는지 ...

 - 쇠스랑,도끼날,쟁기(?)등의 유물들-

 

 

고구려의 유물지역중에는  아차산 근처에 홍련봉 2보루에서 나온 연꽃무늬수막새가 나왔다는데 이 수막새는 기와집에 사용되는 고급시설이 위치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곳이 고구려 한강유역의 점령당시의 관청이 위치한 중심지로 추정되기도 한다고 한다. 

- 연꽃무늬수막새와  점령시기(서기 520년경)를 확인기켜준 글이 세겨진 접시-

  

 

우리곁의 고구려의 유물을 직접 대하는 것에 반가움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쌍용총 장군총 광개토태왕비 그리고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사냥이나 씨름 그려진 벽화등]것에   비하여 너무나 소박하다.

 고구려의 마지막 황성이었던 평양이 있었던 곳인 북한의  고구려유물도 남한에서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을 수 없다 몇년전에 북한의 고려시대 유물을 전신하기도 했었고 일본에서 가져온 북관대첩비를 원래 위치했던 북한으로 보내주기도 했었지, 지금의 정권 분위기로는 기대하기 어려운것인가....우리 민족의 고구려에 대한 목마름을 멀리 중국까지 가서 확인하는 우리국민의 고구려 사랑하는 마음을 민족이 한마음으로 같이 풀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